지옥 (2021, 넷플릭스 오리지널)
- 정진수 의장을 중심으로
공포가 아니면
뭐가 인간을 참회하게 할까요?
연상호 감독의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연상호 감독의 대학교 졸업작품 지옥:두 개의 삶 애니메이션을 각색한 웹툰 지옥을 드라마화 한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너는 몇 날 몇 시에 죽는다. 그리고 너는 지옥에 간다'라고 고지하면
그 시간에 괴생명체가 나타나 그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지옥으로 데려가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1기 이야기의 핵심인물인 정진수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단체 새진리회의 초대 의장이자 지옥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알린 인물이다. (그리고 존잘이다)
괴생명체에게 몇 날 몇 시에 죽는다라고 듣는 현상을 '고지'
그리고 그 시간에 괴생명체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시연'이라고 명명하고
이 고지와 시연은 신이 인간에게 보내는 선악에 대한 메시지라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저 끔찍한 일을 당하는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저 꼴이 되고 싶지 않으면 착하게 살아라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지 않기 위해, 변명 불가능한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신의 눈을 24시간 의식하며 마치 소설 1984의 빅브라더의 감시같이 살아가게 된다.
1984 같은 절대권력하의 전체주의 사회보다 더 암울한 사실은 사이비 종교 시스템 위에 세워졌다는 점이다.
경찰과 시스템의 눈은 피할 수 있지만 신의 눈은 피할 수 없다.
사람의 판결은 틀릴 수도 있지만 신의 판결은 틀릴 수 없다.
독재자에 의한 죽음은 명예로울 수 있지만 지옥행은 변명 불가한 불명예스러운 죽음이다.
거기다 중세 가톨릭처럼 도덕적 판단 권한을 멋대로 신에게 위임받다고 생각하는 광신도들은 정의의 이름이라는 명목 하에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뚝배기를 신나게 날리고 다닌다.
신의 뜻을 거스른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날리던 산채로 화장을 하던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신의 뜻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살인도 용납된다.
스포주의
드라마는 계속해서 무엇이 인간을 선하게 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
정진수는 인간은 자율성이 있기 때문에 악의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죄를 짓기 쉬운 모양으로 태어나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는 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의 법은 죄를 막기에는 너무나 취약했고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고 있다.
정진수는 10대에 20년 후 지옥에 갈 것이라는 고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20년 동안 자신에게 고지된 지옥행에 대해 생각하며
매 순간순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댄 채로 살았다.
'지금 거짓말을 하면 지옥에 가게 될까?' '저 사람을 돕지 않으면 지옥에 가지 않을까?'
그의 꾸준한 선행은 불의를 보고, 약자를 보고 무시하는 것이 지옥으로 가게 되는 죄가 아닐까 하는 공포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에게 주어진 20년은 '절대 선해야 하는 지옥'이었다.
그러나 그가 고지와 시연에 대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례를 조사하며 얻은 결론은 지옥행은 선악과는 무관하게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옥행은 죄의 심판이 아니라 자연재해 같은 것이었으며
신은 선악을 판결하는 인격체가 아니라 별 기준 없이 지옥행을 선고하는 미친놈이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지옥으로 갈 수 있으며
정진수 자신 역시 기억이 시작된 이후 단 한 번의 죄도 짓지 않았지만 지옥행을 고지받았다.
그렇게 자신이 20년간 살아온 '선의 지옥'은 지옥행의 이유를 알려주진 않았지만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자신이 자신에게 한 것처럼, 공포는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시연이라는 끔찍한 죽음과 지옥행에 대한 공포, 전지전능한 신이 판결한 죄인이라는 낙인에 대한 공포.
이 공포는 악의 유혹을 뿌리쳐줄 효과적인 솔루션이었다.
신이 선악을 판단한다면 그 판결에 대해 누가 변명할 것이며 어디에 항소할 것인가?
그는 지옥행은 신의 변덕이 아니라 죄를 지음으로써 결정된다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자신이 살았던 세상에 초대한다.
신은 선악을 판단하는 인격체로 꾸며지고 그 이름을 빌려 자신이 준비한 새로운 세상은 끝없는 참회를 강요하는 것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 제시한다.
절대적 선을 위해 필요악을 끌어들인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밌게 봤지만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
신의 심판 + 사이비 종교 + 세기말은 굉장히 무거운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자칫 유치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암울하고 표현도 잔인한데 과한 장면들이 몇 개 있다.
급진주의 단체인 화살촉의 무지성 깽판은 아무리 신의 뜻을 행한다라는 광신도의 행동이라도 지옥행이라는 시스템이 공공연하게 된 사회가 맞나?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캐릭터의 서사나 성격 변화, 반전 등이 굉장히 만화적인 느낌이 강한데(웹툰 원작이라 그런 듯)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옥은 흔한 사이비종교물을 뛰어넘어 선과 악, 자유의지와 단죄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한다.
종교는 인간을 참회하게 하는가?
선악에 대한 판단은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가?
신이 있다면 자유의지라는 것은 정말로 있는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지옥행을 선고하게 된다면
공포는 진실로 우리를 선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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