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뒤에 먹히는 돼지'는 일본의 유튜브 채널로
일본의 유명 일상만화 '100일 후에 죽는 악어'에서 따온 애초부터 저따위의 이름을 가지고 탄생하였다.
말 그대로 돼지를 처음 데려온 날부터 보여주면서
영상 끝마다 D-day 카운트가 나와서 며칠 뒤가 먹히기로 한 날짜인지 알려준다.
특별히 돼지 포비아가 있지 않는 이상 영상 속 돼지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귀여운 친구의 이름은 '갈비'
사람들은 갈비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좋아하면서
너무 솔직해서 거북한 채널명과 그 기획을 비난했다.
100일 동안 매일 영상을 만들어 업로드하였고 구독자 수는 10만 명이 넘는다.
그리고 대망의 100일이 되는 날
설마 아니겠지?라는 생각이었던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의 영상이 올라온다.
동물 애호가, 비위 약한 사람, 심약자 등 주의 (경고했음)
슬픈 bgm이 나오면서 우리의 갈비는 가방 속에 들어가 어디론가 이동되고
이후 모자이크 범벅이 된 상태로 박스 안에 담겨 돌아온다.
주인 놈은 바베큐 그릴까지 준비해서 맛나게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먹고 합장 후에 갈비의 장례를 치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비의 살아생전 뛰어놀던 귀엽던 모습을 보여주며 영상은 끝이 난다.
당연히 댓글창은 난리가 났고
350만 조회수에 싫어요 5만이 찍히는 기염을 토했다.
귀여운 아기돼지가 통구이가 되어서 주인에게 맛있게 먹히다니.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라고 비난했다.
이후 이 채널의 기획 및 촬영 편집을 한 사람과의 인터뷰가 공개되었는데, 중요한 부분만 뽑아내었다.
- 시청자들 중에는 먹든 안 먹든 무조건 비판받을 거라는 의견도 있는데, 이 기획의 목적은 무엇인가?
"요즘 유행하는 SDGs(지속가능한 발전목표) 중에 '식품 손실 없애기'라는 과제가 있다. 교육 현장이나 기업 등에서 여러 방면으로 대처를 하고 있지만, 그 대처의 의의가 충분히 홍보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우리 콘텐츠를 보면서, 식품 손실에 관한 우리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 기획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있는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 제일 궁금한 것은 갈비의 근황이다. 살아 있는가.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살아 있는지, 살아 있지 않는지 표현하지 않는 것을 정책으로 하고 있다."
-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런 내러티브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사이코패스 같다’는 비난이 있는데.
"찬반양론을 생각하고 기획했다. 만약 ‘갈비’를 먹었어도 사람들의 비난은 굉장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먹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찬반양론이 있었다. 물론 문화권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범위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사람, 어느 문화권에 가더라도 다른 생명을 먹는 것을 통해 사람의 생명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세상을 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 영상을 보는 사람 중 누군가 한 사람에게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실제 그런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하는지.
"처음 세웠던 거대한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살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주지한다면 일정 정도는 이 채널의 존재 자체가 그런 정도의 목적은 이뤘다고 본다."
- 100일째 영상에 붙어 있는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この物語はフィクションです)’ 코드의 의미는. 상황을 일부러 모호하게 처리하는 것이 아닌가. ‘갈비’가 살아있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희망고문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처음 기획을 한 것이 생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진짜 먹혔는지, 안 먹혔는지 자체를 픽션이라 표현하고 싶었다. 통구이를 한 돼지가 ‘갈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 자체를 연상하게 하는 것도 픽션이라고 하고 싶었다."
-101일째 올린 영상 뒤에는 ‘당신이 먹고 있는 돼지고기와 갈비는 똑같은 생명입니다’라고 적어놨는데. 비건이나 동물권 캠페인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건과 똑같은 생각이었다면 ‘먹지 맙시다, 100일 후에는 먹지 않았습니다’라고 발표했을 것이다. 평상시에 우리가 먹고 있고, 먹을 때마다 감사하게 다른 생명을 받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SDGs(지속가능한 발전목표)와 관련해서는 세계적으로 인식이 동일하기 때문에 거기서 출발했다. 일본에서 외식산업으로 버려지는 식품만 700억 엔이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이런 비슷한 기획이 널리 퍼져 버려지는 식품 비율이 1%만 줄어들어도 7억 엔이다. 물론 돼지고기를 안 먹는 문화권도 있고 먹지 말자는 사람도 있지만, 공존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세상이 좋아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채널의 기획자는 SDGs(지속가능한 발전목표) 중 Food Loss(식품 손실)에 대한 경각심과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런 기획을 했다고 한다.
기획자는 아직까지 진짜 갈비를 잡아먹은건지 아니면 연출인건지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저 갈비라는 귀여운 돼지가 통구이가 됐던, 기획자가 다른 통돼지구이를 사 왔던,
돼지 한 마리가 도축되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만약 갈비가 실제로 도축되지 않았고 그 통돼지구이가 다른 돼지라면 괜찮은 것인가?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왜 그렇게 갈비의 도축, 요리를 민감하게 받아들일까?
갈비는 반려동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먹으면 안 돼!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반려동물의 기준은 무엇인가?
교감을 나누면? 사람을 잘 따르면?
축산업에 종사하며 애지중지 가축들을 키우는 축산업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식량이나 재화를 위해 키우면 반려동물이 아닌 가축이고 갈비는 가축이 아니다라는 말은 여기서 해당되지 않는다.
유튜브 채널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갈비'라는 돼지는 처음부터 도축하여 요리하기 위해 데려왔다.
먹기 위해 데려왔고 그 장소가 축사가 아닌 가정집이었으며 그 일상을 우리에게 보여줬을 뿐이다.
갈비는 일반적인 축사 환경보다 훨씬 더 좋은, 오히려 요즘 말하는 동물복지가 잘 되어있는 환경에서 길러졌다.
축산업에 대입해서 볼 때, 갈비를 도축해서 포장하면 고급 식료품점에 파는 비싼 동물복지 삼겹살이 될 것이다.
혹자는 갈비는 미니피그라는 애완용 돼지 종이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먹는 돼지는 보통 식용을 위해 개량된 종이다.
그럼 식용으로 개량된 개를 먹는다면? 식용을 위한 가축으로 정의할 수 있으니 별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럼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10만 구독자 유튜브 채널에 등장하는 저 돼지와 어느 산속 축사에서 진흙에 뒹굴고 있는 돼지.
어느 돼지의 더 생명의 가치가 높은가?
어느 돼지가 도축되어도 되고 어느 돼지가 편하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감정적으론 보통 갈비의 생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둘의 가치가 다를 순 없고,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본 갈비의 귀여운 모습을 좋아하지만, 가정집의 돼지나 축사의 돼지나 둘 다 같은 돼지이다.
돼지고기는 맛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돼지고기 소비량이 아주 높은 편인데, 삼겹살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비싼 소고기 보단 돼지고기를 자주 먹는다. (오늘도 베이컨 먹음)
우리는 유튜브에 올라온 황금빛 기름이 좔좔 흐르는 돼지고기 요리 영상에 열광한다.
처음엔 기획의도에 대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속가능성, 식품 손실.
맞는 말이고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한데, 그게 왜 저 돼지 이야기와 결부되는 거지?
동물보호 패킷을 들고 시위하던 시위대가 해산 후 햄버거 가게에 회식하러 간다는 둥의 그런 모순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맞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식품 손실에 대해 기획자는 통구이가 된 저 돼지가 가정집의 반려동물이었던, 평생을 축사에서 지낸 식용돼지이었던,
같은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 소중함을 되새기고 과도한 식품 손실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귀여운 돼지를 먹지말자, 육식을 하지말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에서의 피식자의 죽음이 무의미하게 되는 행위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독수리가 아기 토끼를 낚아채서 잡아먹는다고 독수리보고 사이코패스라고 하지 않는다.
사자가 한 끼 40kg의 육류를 소비한다고 '선생님,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셔야죠'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많은 동물들이 육식을 한다.
커다란 송곳니를 이용해 산채로 머리를 파먹기도 하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장을 꺼내먹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동물도 사냥한 고기의 20%를 꼬박꼬박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는다.
인간이 생산하는 육류 중 20%는 그냥 버려진다. (과일 및 채소류는 45%)
돼지가 주인공이니 돼지를 예를 들면
한 해 도축되는 13억 마리의 돼지 중 약 2.6억 마리의 돼지는 죽어서 쓰레기통으로 간다.
동물복지, 동물보호, 동물권 등,
만물의 영장으로서 가져야하는 동물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 같은 거창한 것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어쩌면
먹이사슬의 정점서 행하는 무의미한 과소비부터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소비의 행태 중 가장 무의미하게, 많은 생명이 버려지는 것이 바로 식품 손실이다.
복지를 말하며 귀여운 반려동물을 위해 안락한 환경을 조성하거나
가축들의 건강한 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를 위해 쓸데없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동물부터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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